[라이프 칼럼-김정덕 단지FnB 대표] 음식은 가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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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보낸 필자에게 당시 부모님이 외식을 하러 가자면 단연코 동네 중국집이나 전기구이 통닭집, 닭강정집, 만두와 떡볶이집 등이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먹거리 문화가 다양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가정식이 대부분 보편적인 시대였기 때문에 굳이 외식을 안하더라도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집밥이 최고였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진수성찬이었다. 지금은 가정식 백반을 소개해 주는 TV프로그램이 나올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어느날 모의고사 성적이 형편없이 나와 한참 시무룩해 있던 내게 아버지께서 단골이라며 데리고 간 국밥집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순댓국 한 그릇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부자는 그저 순댓국 뚝배기 두 개와 머리고기, 내장이 가득한 수육 한 접시를 놔두고 아무 얘기 없이 따뜻한 국물과 잘 익은 깍두기 하나로 배를 채우며 아버지는 무언의 말씀을 해주셨다. ‘기운 내라!’ 말씀하지 않으셔도 알아들었을 정도이다.

아버지 세대들은 굳이 우리들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말씀을 다 안 해주셨다. 가장으로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셨으며 급변하는 경제 성장에 디딤목으로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신 그런 분들이셨다. 아들에게 본인의 허기진 배를 달래던 장소이자 직장 동료들과 친목을 도모했을 장소였으며 민주주의에 목말라 하던 신세 한탄의 장소였을 국밥집에 시험 망쳤다며 시무룩해 있던 아들을 데려가준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수 있을 듯하다.

쿰쿰한 돼지 냄새 가득한 정성 담긴 순댓국 한 그릇과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북이 쌓인 돼지수육 사이에 아버지와 나는 그저 음식으로 교감했을 뿐이다. 더 이상 필요한 것도 없었다. 그저 뜨끈한 국물 한 숟가락에 아버지의 마음을 다 이해할 듯하다. 지금 내가 아버지가 됐으니 말이다.

음식은 이렇듯 매개체이다. 나는 외식업 자영업자들에게 식당의 정의를 이렇게 내려 주곤 한다. “식당은 사장님과 고객 사이를 연결해주는 소통의 장입니다. 고객과 소통하는 공간이란 얘기입니다. 소통을 하기 위해 중요한 매개체가 바로 사장님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음식’입니다.”

2002한일월드컵 이후 많은 식당이 프랜차이즈화 했다. 엄청나게 많은 브랜드가 생겨났다. 공정거래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2018년도 전체 브랜드 수는 6052개이다. 집계 이후 사상 처음으로 6000개가 돌파했으며 가맹점은 20만개를 훌쩍 뛰어넘었다.

언젠가부터 음식은 정성과 사랑의 매개체가 아닌 공장에서 제조하듯 찍어 내는 공산품이 돼가고 있다. 물론 이런 프랜차이즈 식당이 다 잘못 됐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음식을 평생 먹어야 하는 존재이며 그 음식에는 판매하는 이의 철학과 음식 스스로의 가치를 잘 담고 있어야 한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가정간편식의 범람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 잡고 있는 동네의 노포(老鋪·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발견하곤 한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추억으로 기억되는 이런 노포에 가끔 들리면 30년 전 그 맛과 운치는 아니다. 그래도 그 음식점에 나는 또 우리 아들을 데리고 간다. 음식점은 단순히 맛으로만 표현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음식점을 창업하기에 앞서 예비창업자에게 꼭 던지고 싶은 화두 중에 하나이다. “여러분이 제공하는 음식의 가치와 철학은 과연 무엇입니까?”

김정덕 단지Fn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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